분류없음 | Posted by 고추장찍은멸치 2011.04.03 03:07

파주출판단지로의 첫 입성

나의 인생 멘토(?)인 류 선배의 소개로 인연을 맺게 된 파주출판단지.
3월 중순경 오후에 면접을 보기 위해 첫발을 내딛었을 때의 황량함이란...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번 정류장은 파주출판단지 입구입니다'라는 버스 안내방송만 믿고 내렸건만,
한쪽은 한없이 펼쳐진 논밭뿐이요, 다른 한쪽은 창고로 보이는 건물만 연이어 있을 뿐, 사람 한명 구경할 수 없었다.
파주 방면으로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한다는 창고 관리인의 말에 망연자실했지만...어찌하랴ㅠㅠ

꽃샘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가니 커다란 개천을 사이에 두고 열지어 들어선 출판사 건물들이 보였다.
멀리서 보면 비슷해 보이는 건물들이 가까이 가서 보니 제각기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었다.
모던한 느낌의 회색을 띤 기하학적 모습의 건물에서부터 귀여운 느낌의 둥그런 우주선 모양의 건물까지 다양했다.
건물들은 많은데 사람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모래바람 속에서 한참을 헤매다 만난 서부의 한 마을처럼...
서울에서 한참 떨어진 파주, 그것도 황량함마저 도는 이곳 출판단지에서 난 도대체 뭐하는 거지?
하는 자책감마저 들었다. 세찬 바람에 정신마저 혼미해진 상태였기에 면접은 남의 일인 듯 멀게만 느껴졌다.

4월 1일  첫 출근, 파주출판단지를 향한 아침 풍경은 또 달랐다.
버스를 타기 위해 합정역을 나오는 순간  버스정류장에 줄지어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놀라 뜨악 입을 다물지 못했다.
평소 같으면 한참 꿈속에서 단잠을 자고 있을 이 시간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늘어선 이 출근 행렬은  낯설기 그지 없었다.
이 줄 끄트머리에 나 또한 몸을 들이민 채 줄이 줄어들기를 바라며 맥없이 기다려야 했다.
한 대의 버스를 보내고, 10분을 더 기다리고서야 버스에 탈 수 있었고 간발의 차로 버스 맨끝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서서 가는 사람들의 지친 모습을 보며 출근전쟁의  비정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자유로를 30분 정도 달린 후에야 목적지에 닿았다.
버스에서 발을 내딛는 순간 이곳이 영국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자욱한 안개 속에 서 있어야 했다.
서울은 분명 햇살이 내리쬐는 화창한 날씨였기에 처음엔 근처에 화재가 났나 싶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근처에 북한강이 있어서 아침저녁으로 안개는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라 했다.
안개 속을 걸으며 잠깐이었지만 북부유럽의 아침 거리를 거니는 듯 이색적인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낯선 파주출판단지가 익숙해지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또한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과 오랜만에 손을 대는 편집일에 친숙해지려면 얼마만큼 시간이 흘러야 할까?
 

분류없음 | Posted by 고추장찍은멸치 2011.03.31 16:15

이른 아침을 맞는 삶을 기대하며...

경주에 다녀온 여독 탓일까?
몸이 찌뿌듯하고 콧물이 나는 초기감기 증상이 보인다.
경주여행 이튿날, 세찬 바람을 맞으며 하루종일 자전거를 타고 경주 이곳저곳을 횡단하고 다닌 게 무리였나보다.
집에 돌아와 신문을 보니 일본 원전에서 흘러나온 방사선 일부가 바람을 타고 우리나라로 유입되었다고 하는데...
혹시 이날 내가 쐰 바람 속에 방사선 물질이 있진 않았을까 하는 의심 또한 든다. 
게다가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온 탓도 있으리라.
새마을호나 무궁호를 타면 기차의 속도가 더디기에 책도 읽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여행의 잔상을 즐길 수 있는데,
경주에서 서울까지 직행으로 가는 기차는 이제 KTX가 유일하다고 한다.
KTX가 사람들의 생활을 단일권으로 만듯 탓인지(2시간 걸림), 신경주역에는 평일인데도 퇴근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수도권의 전철을 연상케 했다. 그리고 기차 안은 왜그리 좁고 답답한지...분위기 또한 숙연해질 정도로 조용했다.
여행객인 내가 이상할 정도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퇴근하는 직장인들이었다.    
아침부터 일하고 퇴근하는 직장인들의 피로감이 나에게 전이라도 된 듯 기분이 무거워졌다.
다음엔 절대로 KTX를 타지 않으리라ㅠㅠ 

내일부터 파주로 출근할 생각을 하니 백수생활의 마지막인 날인 오늘 뭔가 정리해야겠다는 의무감이 들었기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동네 도서관에 와 있다.
평일에 자유롭게 드나들던 이곳 도서관도 이젠 이용하기 힘들 것 같아 아쉽다.
편집일에서 손을 뗀 지 5-6년이 넘었는데...과연 할 수 있을까?
요며칠 출판 관련 책을 여러 권 읽고, 출판사에 들어가면 맡게 될 일본사 원고와 관련된 책도 읽긴 했지만...
막연하기만하다.
내일이 출근인데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다이어리, 편집 관련 자료?, 개인용 컵?. 일할 때 입을 가디건? 등...
백수생활이 긴 탓인지 감이 안 온다.

무엇보다 내일부터 6시에 기상해서 7시에는 집을 나서야 9시까지 파주에 도착할 수 있다.
9시에 일어나 청소하고 빈둥대다 아점을 먹는 나의 여유로운 생활은 오늘부로 쫑났다ㅠㅠ
아침 일찍부터 바쁘게 걷거나 뛰는 도시인들 삶의 무리에 나도 끼어들어야 한다.
긍정적 마인드^^
내일부터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아침을 일찍 맞이하고 하루를 더 알차게 꾸릴 수 있다.
그리고 열심히 땀흘린 후의 퇴근길 발걸음이 가벼울 것이다.
내일을 기약해 본다^^ 
분류없음 | Posted by 고추장찍은멸치 2011.03.31 15:18

경주 게스트하우스 306호

두 번째로 가는 경주 여행이다.(2011. 3. 28)
작년 여름엔 조카와 함께였지만, 이번엔 혼자이다.
먼 곳까지 혼자 여행하는 것은 처음이기에 두려움이 앞섰지만,
평일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인 '한가로움'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아 용기를 냈다.

경주를 선택한 이유는?
한번 가보았기에 조금은 만만해 보였고, 자전거 여행에 최적의 장소이며,
무엇보다 믿을 만한 숙박시설인 '사랑채'라는 한옥 게스트하우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채'는 중년의 부부가 운영하는 한옥으로 된 민박집으로, 규모는 작지만 여행 전문서적인 론리 플레닛에 실릴 정도로 외국 배낭객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아담하고 예쁜 한옥 집이다.
무엇보다 소박해 보이는 주인 부부가 마음에 드는 곳이다.
작년 여름에는 성수기라 예약을 놓쳐 아쉬웠기에, 이번에는 꼭 이곳에서 묵으리라는 기대가 한가득이었다.   

아뿔사! 그런데 처음부터 삐끄덕이라니ㅠㅠ
경주행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의 설레임을 즐기고 있던 중에...
'사랑채' 방이 이미 꽉 차버렸다는 청천벽력 같은 비보를 접해야 했다.
비수기의 평일이기에 방이 많이 있을 거라 믿고 예약을 안 한 게 실수였다. 설마했는데...
경주에 도착하면 저녁쯤 될 텐데, 이를 어쩔꼬?
모텔이나 여관은 친구랑 같이 가도 무서워서 잠을 설칠 정도로 겁이 많은 나였기에 당혹스러움은 극에 달했다. 
갑자기 타지에 혼자 내버려진 듯, 경주가 공포의 장소로 다가왔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나올 수 있는 법!
우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관광안내소로 들어가 근처 숙박시설 문의를 했다.
경상도 특유의 경쾌한 사투리로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안내원의 웃는 모습을 보며
낯설게만 느껴졌던 경주가 친근하게 다가왔다.
다행히 경주역 근처에 게스트하우스가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물어물어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입만 있으면 못 할 게 없다는 말이 실로 피부에 와닿았다.

'경주 게스트하우스'(간판은 외국인들을 배려해 영어로만 쓰여 있다)
경주역에서 그리 멀진 않지만 골목 한 구석진 곳에 빼꼼히 간판만 살짝 보이기 때문에 찾기에 만만치 않다.
하지만 실내로 들어서면 게스트하우스답게 널찍한 휴게실이 아늑한 인상을 풍기고,
푸근해 보이는 주인장 아저씨가 안내데스크에서 반가이 맞아준다.
다인실에서부터 2인실 4인실까지 방의 종류는 다양했고 숙박비 또한 저렴한 편이었다.
혼자 쓸 수 있는 3층 스위트룸으로 정하고 그곳에 짐을 풀었다.
일반 숙박시설과 다른 점은 각 방의 열쇠가 없다는 점이다. 
대신 방 안으로 들어가면 열쇠가 달린 사물함이 있어서 그곳에 짐을 보관하게 되어 있다.
방 열쇠가 없다는 말에 당황스럽긴 했지만 잠 잘 때 안에서 문을 꼭 잠그면 아무 염려 없다는 아저씨의 말을 믿기로 했다.
그래도 저녁 먹으러 외출할 때는 조금은 찜찜했다ㅋㅋ

7시쯤 된 경주 시내의 저녁은 서울과는 달리 어둠이 짙고 인적이 드물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저녁을 대충 때우고 게스트하우스 아저씨가 가보기를 권한 안압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곳곳이 문화유적지라고 한 경주답게 경주역에서 얼마 가지 않은 곳에 안압지며 첨성대며 오대릉이며...
발 닿는 곳 하나하나가 역사책에서 방금 막 튀어나온 듯 내 앞에 생생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시내에서는 사람 구경하기 힘들었는데, 정작 이곳에 오니 단체로 수학여행 온 초등학생과 중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함초롱한 초롱불을 하나씩 든 초등학생들의 행렬은 마치 신라시대의 한 장면을 보듯 기분을 묘하게 만들었다.
밤하늘의 별 또한 서울과는 달리 신라시대의 기운을 발하는 듯 신비스럽게 보였다.
신라시대에 하늘을 관측했다는 첨성대 꼭대기에 올라가 별을 바라보면 그 기분은 어떨까?

쌀쌀한 밤공기를 털어내려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서자마자 원두커피를 한잔 마셨다.
따뜻함이 온몸에 퍼지면서 기분이 한결 나른해졌다.
라운지에서는 아저씨가 투숙객들과 함께 경주에 대한 소개로 얘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306호 내 방은 짐을 풀 때보다 한결 훈훈하게 느껴졌다. 씻을 때도 잠자리에 들 때도 전혀 무섭지 않았다.
밤새어 읽기로 한 <이야기 일본사>는 몇 장을 넘기지 못하고 이내 한켠에 내동댕이쳐졌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의 낯설음은 '내가 지금 왜 여기 있지?' 하는 물음을 던지게 했다.
기나긴 백수생활과 잠깐의 연애와 실연, 그리고 방황...일상에서 멀어져 있던 나의 삶.
너무 멀어져 있었기에 '일상'의 모습이 낯설기만 하고 두렵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경주 여행이 끝나면 이제 일상의 궤도에 발을 들여놓고 운동화를 고쳐 매듯 내 주어진 삶에  열심히 임하리라.
여행이 주는 선물은 낯선 곳에서 낯선 모습의 나를 발견하게 해 주는 신선함인 듯하다.        


    
분류없음 | Posted by 고추장찍은멸치 2011.03.24 02:37

대형서점에서 일어난 가방 도난 사건ㅠㅠ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청량리 영풍문고.
집 근처에 대형서점이 없어 아쉬워했는데,
하루는 청량리 지하철역에서 나오던 길에 이 서점을 발견하고 기뻐했었다. 
대형서점을 가기 위해 종로나 광화문까지 가야 하는 수고로움을
이제는 하지 않아도 되기에 그 기쁨은 더했다.

지인과의 약속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오늘도 영풍문고 라운지에 앉아 독서삼매경에 빠졌더랬다.
서점 중간에 위치한 이 라운지는 사방이 통유리로 장식된 둥근 원 형태로,
안으로 들어가면 가운데 둥근 기둥을 따라 동그랗게 자그만한 벤치가 있고,
통유리를 따라 동그랗게 커다란 벤치가 쭉 놓여 있다.
책 읽기에 편안한 배치이다.

내가 자리잡은 곳은 통유리 앞 벤치로 평일이라 몇 사람만이 띄엄띄엄 앉아 있었다.
갈색 가죽 형태의 조그마한 숄더백을 옆에 놓고 책을 읽고 있는데...
약속 시간이 한참이 지난 지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고 좀더 늦어지겠다는 소식을 전했다.
할 수 없이 좀더 기다려야 했기에 핸드폰을 손에 쥐고 책 속으로 다시 빠져들었다.
한참을 보고 있는데...숄더백의 줄이 잠깐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냥 착시현상으로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지인이 오기 전에 영화 시간표를 미리 확인하고자 벤치에서 일어났는데 뭔가 허전함감이 들었다.
아뿔사!
어깨에 매야 할 숄더백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조그마한 숄더백이기에 어디 떨어지지 않았나 한참을 뒤져보았지만 흔적 하나 발견할 수 없었다.
한자리에서 뱅글뱅글 돌기를 여러 번...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라니ㅠㅠ
마침 경비원으로 보이는 분에게 사정을 얘기했더니 이런 경우가 흔하다고 했다.
경비원을 따라 한참을 가니 물품보관소가 나왔고, 그곳에서 분실신고를 했다.
여 직원에게 도난당한 가방에 대해 자세히 얘기를 했더니 안내방송를 먼저 해 주었고,
다음은 카드 분실신고를 할 수 있게 카드사에 전화를 해 주었다.
다음으로 안타깝게도 내가 있던 자리는 cctv가 없어서 도난 현장을 볼 수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한숨만 나올 뿐...할 수 없이 내 연락처만 남기고 물품보관소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비싼 가방이 아니기에 현금만 챙기고 가방을 통째로 휴지통에 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하며,
영풍문고가 있는 지하 매장에서부터 1층 2층 3층 매장까지 곳곳에 있는 휴지통을 뒤지며 돌아다녔다.
하지만 기대는 금방 절망으로 바뀌었고 소파에 주저앉고 말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가방만 눈에 들어올 뿐...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연필 하나만 잃어버려도 기분이 찜찜한데,
가방 속에는 지갑, 책 한 권, 며칠 전에 고가로 산 립크루즈까지...
지갑 속에는 신분증, 5만원 정도의 현금, 몇 장의 신용카드, 각종 할인 카드에 명세서, 명함 등등
훔쳐간 사람에게는 현금 외에는 아무 의미가 없겠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것들이 가득들어 있는 보물함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핸드폰은 잊어버리지 않았기에 지인과 연락이 닿았고
차를 갖고 온 지인 덕분에 공황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대형서점인 영풍문고에 cctv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것과 
경비원의 역할이 조금은 미약했다는 점이 내내 아쉬웠다.
물론 물건을 소홀히 한 내 잘못이 일차적인 잘못이지만...
대형서점이기에 도난사건에 대한 보안이 철저하리라 믿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책 분실에 대한 철저한 보안만큼, 책을 읽는 손님들의 물건에도 신경을 써주는 작은 배려가 아쉽다.

가방을 잃어버리고 속상하긴 하지만,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라는 액땜쯤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물건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깨달은 하루였다^^  
   
    
분류없음 | Posted by 고추장찍은멸치 2011.03.06 15:24

<블랙스완>에 전율하다!!

삶 자체가 열정인양 항상 미소를 머금고 사는 지인과 함께 본 첫 영화이다.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아, 블랙스완!" 하고 동시에 지목한 영화였다고나 할까?
(스크린이 손에 잡힐 듯한 맨 앞줄에 앉아 고개를 최대한 젖히고 봐야 하는 수고를 감내해야 했지만ㅠㅠ)

무대 코앞에서 장대하고 묵직한 뮤지컬 한 편을 본 듯 영화가 끝나고도
땀에 젖은 몸에 이는 전율 땜에 한참을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주인공 니나가 내뱉는 마지막 한마디, "완벽했어, 정말 완벽했어!"
누구를, 무엇을 위한 완벽이란 걸까? 인간 본연의 모습은 과연 존재하기는 한 걸까?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이 발레를 소재로 해서 만든 <블랙스완>은,
백조와 흑조의 상반되는 역할을 동시에 소화해야 하는 주인공 발레리나의 변화를 
현란하면서 충동적으로 담아낸 심리 스릴리에 환상과 환청, 기괴함까지 가미한 호러물이다.
우아하고 서정적인 고급한 예술축에 드는 발레영화를 기대했다면 그 기대는 예초에 버리는 게 좋다.

뉴욕시티 발레단의 얼굴이자 오랫동안 프리 마돈나로 활동해온 베쓰(위노라 라이더)가 은퇴하자,
발레단의 차기작으로 <백조의 호수>를 발표한 단장(뱅상 카셀)은 니나(내털리 포트먼)를 주연으로 선택한다.
베쓰를 대신해 발레단의 주연을 꿰찬 니나의 기쁨은 잠깐일뿐,
백조와 흑조를 한꺼번에 연기해야 하는 중압감이 니나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순수하고 우아한 니나는 백조 역할로서는 부족함이 없지만, 
욕정을 이끌어낼 정도로 도발적이어야 하는 흑조 역할을 하기에는 너무 나약하다.
이에 비해 새로 입단한 릴리(밀라 쿠니스)는 니나에게는 없는 마성적인 매력의 소유자다.
스킬를 넘어선 도발적 마력을 거침없이 강요하는 단장 앞에서 니나는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고,
일탈행위를 일삼는 릴리 앞에서 동경과 경계가 교차하면서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 방탕함에 몸을 맡기고   
점점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혼돈하는 정신분열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급기야 자신의 몸에서 가시가 돋아나는 환상 속에 빠지면서 자신이 마치 흑조로 변해가고 있다고 여긴다. 

카메라는 줄곧 니나의 변화 과정을 빠른 속도로 쫓아간다.
관객에게도 숨을 헐떡거리며 쫓아오라고 거침없이 몰아부치는 듯하다.
이 영화를 위해 1년 넘게 혹독한 트레이닝과 발레 연습을 하면서 
발레리나에 적합한 몸매를 만들었다는 내털리 포트먼의 저력이 빛을 발한다.

영화의 주요 흐름을 차지하는 <백조의 호수>는 구체적으로 이렇다.
지그프리트 왕자가 숲 속에서 우연히 백조에서 여인으로 변하는 오데트를 발견하고 첫눈에 반하게 된다.
오데트는 악마의 마법에 걸려 백조로 변하게 되었고, 이 마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진실한 사랑임을 알게 된 왕자는 다음날 오데트와의 결혼을 발표하기로 한다. 
하지만 다음날 왕자 앞에 나타난 여자는 오데트가 아니라 악마의 딸인 오딜(흑조)이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왕자는 오딜의 유혹에 넘어가고 만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왕자가 오데트를 찾아가지만 오데트는 강물에 몸을 던져 죽음을 선택한다.

니나가 선택한 백조와 흑조 역할은 결국 이 이야기처럼 니나를 파국으로 치닫게 한다.
순수하고 가녀리기만 했던 니나는 자신의 내면에 잠자고 있던, 
자기 파멸로 치달을지도 모를 흑조를 끌어냄으로써 
'완벽'이라는 목표에 이르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게 된다.

어떤 이는 니나를 정신병자라고도 하고, 예술혼에 미친 사람이라고도 할지 모른다.
근데 난 니나의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꾸 눈물이 났다.
니나가 현실적인 여자였다면 자신이 망가지기 전에 멈추었을 것이다.
하지만 니나는 외부 자극에 끊임없이 몸을 내맡길 수밖에 없을 정도로 나약한 인간이었기에
자신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건 하닐까? 하는 연민이 들었다.
'완벽한 연기'라는 허울좋은 미명하에 희생된 거라고나 할까?

사람은 다들 양면성이 있다고 한다.
현실에 이로운 면과 그렇지 않은 면이 공존하고 있을 것이다.
너무 이분법적인가?
아무튼 니나를 보면서, 난 현재 어떤 사람이고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변해갈까?
하는 숙제를 떠안은 듯하다.  
 
  

      



분류없음 | Posted by 고추장찍은멸치 2011.03.04 01:07

부대찌개 요리(?)에 도전하다!

지금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요리는 몇 가지나 될까?
헤아려본다.
후라이, 라면, 김치찌개, 두부튀김, 볶음밥, 카레라이스...정도?
살아온 세월에 비하면 무지 빈약하다는 느낌!!!ㅋㅋ
집에서 요리는 거의 엄마 몫이라는 무언의 합의가 깔린 탓일까?
내가 할 수 있는 요리도 엄마가 집을 비우셨을 때에만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

그래도 요리하는 과정은 재미있다.
먼저 재료를 사고 재료에 맞춰 칼로 깎고 써는 기초 작업을 끝낸 후, 
불 위에서 각각의 재료를 섞고 조미료로 간을 하면 전혀 새로운 음식이 탄생하니 말이다. 
무엇보다 내가 만든 음식이 식구들의 입으로 들어가 환상적인 미각을 뽐낼 때의 순간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다들 기본으로 하는 걸 가지고 엄청 자화자찬하는 듯ㅋㅋ 그래도 엄마 손맛을 닮아 맛있다고들 한다ㅋㅋ)

갑자기 웬 부대찌개?
이번에도 역시 엄마가 인천에 가셔서 저녁식단을 책임져야 할 상황에 쳐했고, 
이번 기회에 이모한테서 전수받은 부대찌개 비법을 몸소 활용해 보기로 했다.
먼저, 마트에 가서  필요한 재료를 산다.
- 돼지고기 찌개용으로 반근, 다시마, 송이버섯 3묶음, 소시지, 두부
이제 본격적인 요리 시작이다.
이때 중요한 건 요리 순서를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요리 도중에 순서가 뒤죽박죽되어 당황스런 상화에 빠지게 되어
재료들 자체의 맛을 끌어내기가 힘들어져서 맛이 떨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부대찌개에 넣을 육수 준비가 우선이다. 육수는 바로 다시마 국물이다.
찬물에 다시마와 멸치를 넣고 국물이 우려날 때까지 끓인다.
(이번 경험으로 봤을 때 끓는 물에 다시마와 멸치를 넣어야 할 듯하다.
찬물에 넣고 끓였더니 비린내가 조금 났다ㅠㅠ)

육수물이 끓는 동안 재료 손질을 한다.
우선 돼지고기는 그릇에 담아 적당량의 후추랑 소금을 넣어 절여놓는다.
(이렇게 해 놓으면 고기가 연하고 간이 베여 더 맛있단다ㅋㅋ)
다음은 묵은김치를 적당한 크기로 썬다
송이버섯은 밑둥만 잘라 놓으면 된다.
두부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 놓는다.
부대찌개의 히어로 소시지!!!- 소시지는 어슷썰기를 한다.
(소시지가 없는 부대찌개는 상상할 수 없기에 될 수 있음 많이 많이 준비한다ㅋㅋ)
준비된 재료들을 커다란 전골용 냄비에 둥글게 가지런히 넣는다.

다음 순서에서 많이 헤맨 것 같다.
재료를 넣은 냄비에 육수물을 넣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간 맞추기를 할 때 뭘 넣어야 할지 순간 머리가 하애졌다.
우선 가스불을 켜고 무작정 고추가루를 몇 숟갈 넣고 소금 넣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순간적으로 떠오른 게 양념장 만들기를 까먹었다는 사실이다.
부랴부랴 그릇에 고추가루와 고추장에 육수를 넣고 마늘이랑 후추를 섞어 휘 저어서 양념장을 만들었다.
조리 순서에 혼선이 와서 당황한 바람에...
재료의 양에 맞춰 양념장을 넣어야 하는데 너무 많이 넣어버려 국물이 시뻘개져 버렸다.
게다가 국물이 너무 많아 김치찌개처럼 보일 정도였다.
할 수 없이 두부랑 소시지를 한껏 추가해서 넣고, 나중엔 라면사리까지 덤으로 넣었다.
그리고 한참을 조리고 조리니 제법 부대찌개 모양새가 나왔다.
이모의 요리를 기다리고 있던 조카들이 냄새가 넘 좋다고 기대어린 눈초리를 보내기까지 했다.ㅋㅋ

두두두두!!! 부두찌개 개봉 박두!
맵지 아닐까 하는 잠깐의 우려는 맛을 본 조카들의 탄성에 한순간에 사라지고
식구들의 숟가락과 젓가락이 모두 부두찌개로 향했다는 사실ㅋㅋ
내 손맛이 깃든 혜정표 부두찌개, 이만하면 첫번째 시도치곤 성공이라고 자화자찬해 본다ㅋㅋ
    
 
 
 

분류없음 | Posted by 고추장찍은멸치 2011.02.24 01:58

'강촌' 하면 떠오르는 건?

대학 시절 OT 나 MT ? 아님,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무궁화호? 아님, 자전거길?
20대 때, 기나긴 겨울이 끝나갈 쯤 봄의 기운에 이끌려 젊은이들이 찾는 야유회 필수코스였던 곳!
나이가 들면서 차츰 잊혀져갔던 그 강촌을 오늘 나들이 행선지로 정했다.

20대 때의 추억보다는 유난히도 추웠던 이번 겨울의 기세가 꺾이고
봄 기운이 완연한 오늘 하루를 도시가 아닌 야외에서 보내고픈 마음과
마침 봄방학을 맞이한 조카 두 놈에게 바깥바람을 쐬어주고 싶다는 기대심리가 맞아떨어졌다고나 할까?
게다가 집 근처에 있는 상봉역에서 춘천까지 가는 전철이 생겼다고 내내 들은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청량리역 만남의 광장에서 만나 기차를 타고 갔던 낭만이 사라져 아쉽긴 했지만,
기차표를 끊고 기차시간에 맞춰 가야 하는 번거로움 없이 아무때나 가도 되는 편리성은 마음에 들었다.
전철역 풍경은 어떨까? 평일이니 역내는 한가롭겠지? 하는 기대를 하며 집을 나섰다.
하지만 전철역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그 기대는 단번에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전철역 풍경은 일반 중앙선 역들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구조였고
평일이라고 하기 무색할 정도로 전철역은 사람들로 꽉 차서 플렛폼까지 인파에 이끌려 겨우 들어설 수 있었다.

다행인 건 대기중이던 춘천행 전철이 있었다는 것!
아뿔사, 근데 이게 뭐람?
들어선 전철 안은 이미 자리가 없어서 서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조카놈들을 데리고 한 시간도 넘게 걸릴지도 모를 강촌까지 어떻게 서서 가지?
하는 걱정을 하며 전진 또 전진을 했다.
노력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한참을 전진하니 빈 자리가 있어서 우리 셋은 소중한 보금자리에 안착할 수 있었다.

워낙 긴 노선이다 보니 출발 시간이 정해져 있어, 30분 가까이 기다린 후에야 출발했다.
그 사이 전철 안은 서서 가는 사람들이 빽빽히 들어찰 만큼 꽉 차 있었다.
등산이나 나들이를 가는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고, 방학 중인 학생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전날밤에 잠을 잘 못 잔 탓에 곤한 잠에 빠진 터라 창밖 풍경은 거의 보지 못했다.
하긴 서 있는 사람들이 시야를 가려 눈을 뜨고 있었서도 보진 못했겠지만ㅠㅠ
그냥 어두운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이모, 얼마나 더 가야 돼?"
6살짜리 조카놈이 서울에서 출발하자마자 연발해대던 질문이다.
이 지루한 질문은 한 시간쯤 지난 후 강촌역에 도착하고서야 끝이 났다.
엄밀히 말하면 강촌역까지 4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춘천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린다.

강촌역을 빠져나오자 맑고 상쾌한 공기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여전히 강촌역은 젊은이들의 장소인 듯, 
중고생이나 대학생들로 보이는 남녀 청춘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런데 너무 낯선 느낌?
이전에는 기차역에서 내리면 바로 자전거길이 있는 멋진 풍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곳은 휑해 보이는 도로와 관광안내소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다.
우선 안내소에 가서 자전거 대여소가 어딘지 물어보았다.
다행히 도로를 따라 10분 정도 내려가면 자전거 대여소가 즐비해 있다고 했다.

도로를 따라 걷긴 했지만 멀리 내다보이는 기암절벽이 자태를 뽐내는 산들이 있어 기분은 좋았다.
강촌 초입에 들어서니 안내소 직원 말처럼 자전거 대여소는 많이 있었다.
그런데 자전거길은 2차선 도로 옆 좁은 보도를 한참이나 걸어가고서야 발견할 수 있었다.
자전거로 도로 위를 달리는 건 위험할 것 같아 자전거길에서 가장 가까운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렸다.
자전거 한 대당 3천원이고, 시간은 2시간 정도인데 그냥 실컷 타고 오라는 넉넉한 인심을 보여주었다.

자전거길은 여러 곳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어린 조카 땜에 평탄한 길인 강변을 따라 페달을 밟았다.
아직 겨울이라 그런가? 강변길 주변이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휑하고 코스도 짧아서 행선지를 바꾸기로 했다.
대여소 아저씨가 험한 길이라 권하고 싶지 않다고 한 구곡폭포행 코스에 도전해 보기로 한 것이다.

구고폭포 코스 초입은 차도 다니고 공사 중인 구간이 있어 번잡스러웠지만, 
점점 더 들어가자 깊은 산 속에 들어온 듯 고즈넉한 분위기에 계곡물 또한 맑고 투명했다.
따뜻한 날씨인데도 곳곳에 눈이 쌓여 있고, 빙판길 또한 많이 있어 조심해야 했다.
무엇보다 오르막길 연속이라 어린 조카놈의 연거푸 쏟아내는 울부짖음에 멈추는 시간이 더 많았다.
인적이 드문 산길이라 가게도 거의 없었다. 간혹 있는 포장마차형 가게도 문이 닫혀 있었다.
조카를 달래가며 한 시간 넘게 오르고 오르기를 한참 한 후에야 산길에서 벗어나 도로 옆 보도로 나올 수 있었다.
구곡폭포에 거의 다 온 걸까? 그런데 웬걸? 구곡폭포까지 2킬로미터를 더 가야 한다는 이정표 발견ㅠㅠ

조카는 물론 나 또한 한순간에 다리가 풀려버렸다.
알고 보니 강촌역에서 내린 등산객들이 도로를 따라 20분 정도 걸으면 우리가 도착한 이곳에 닿고,
조금만 가면 본격적인 등산길이 나오며, 거기서 한참을 가야지 구곡폭포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부터는 자전거를 탈 수 없으니 자전거 보관대에 묶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20분 정도면 걸어올 길을 비탈진 산길을 돌고돌아 한 시간 넘게 걸려 올다니...망연자실!

힘이 빠진 우린 결국 구곡폭포는 다음을 기약하며 우선 허기를 채우기로 했다.
마침 닭갈비집이 있어 닭갈비를 먹으며 기분도 달래고 기력도 재충전했다.
맛도 맛이지만 서비스하시는 할머니의 정겨운 말투와 
세심하게 챙겨주시는 마음씀씀이에 가슴까지 푸근해졌다ㅋㅋ
이름은 까먹었지만 등산로 초입 한적한 곳에 규모가 꽤 큰 식당이다.

돌아가는 길은 원기회복도 하고 내리막길이라 신나게 쌩쌩 달릴 수 있었다.
단순한 조카놈은 자기 자전거가 무지 빨라졌다며 내내 싱글벙글이었다.
대여 시간을 2시간 넘게 초과한 탓에 걱정을 했는데,
대여소 아저씨는 끝까지 넉넉한 인심을 보여주셨다.^^

강촌역에서 10분 정도 기다려 상봉행 전철을 탔는데, 춘천에서 탄 사람들로 자리는 이미 꽉 찬 상태였다.
궁여지책으로 전철 맨 앞칸 자전거 고정대에 몸을 의지한 채 출발할 수 있었다.
그런 여건도 잡지 못한 나이 지긋한 동호회 등산객들은 한무더기로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여담을 나누었다.
도심 전철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기에 쿡쿡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전철에 타고 있던 젊은 엄마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경춘선은 항상 노인분들이 장악하고 있다고 한다.
차표도 공짜인데다 일이 없는 노인분들이 아침부터 삼삼오호 모여 나들이를 하시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평일이라고 여유부릴 생각은 하지 말라는 당부까지 했다ㅋㅋ
 
                  
 

 

분류없음 | Posted by 고추장찍은멸치 2011.02.22 01:44

노트북 자판 열라 치다 구사리 맞다ㅠㅠ

평소 내가 애용하는 중랑구립도서관.
집에서 자전거로 달리면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로,
봉화산 끝자락이 포근히 감싸고 배밭이 멋진 배경을 이루고 있는
신내동 끄트머리에 자리잡고 있는 꽤 규모가 큰 도서관이다.

햇살이 따뜻이 비추는 날에는 봉화산을 따라 나 있는 샛길로 들어서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시골길의 맑은 공기와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걸
하나의 낙으로 삼은 지 오래다.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인적이 드물만큼
조금은 외진 곳이라 내가 발견한 나만의 공간 같아 기쁨은 더욱 크다.

오늘은 봄방학을 맞은 조카와 동행한지라 자전거 대신 버스를 타서 조금은 아쉬움이 있다.
조카는 1층 어린이도서관으로, 나는 2층 종합정보실 전산실의 한켠에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켰다.
빠른 시일 내에 작성해야 할 숙제(?)가 있었기에 한글 문서 화면을 띄워놓고 열심히 작업을 했다.
원하는 문장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의 답답함이란ㅠㅠ
2시간을 넘게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열심히 문서 작성을 하다가
배고프다는 조카의 성화에 늦은 점심을 먹고 티타임을 갖기로 했다.

3층 옥상에서만 커피를 마셨는데, 오늘은 1층 바깥 휴게실을 이용하기로 했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뺀 후 햇볕이 잘 드는 곳이 어딜까 한참을 둘러보다가 멋진 곳 발견!
아니 이럴수가! 휴게실 한켠으로 공원처럼 뻥뚫린 공간과 함께
야산이긴 하지만 경사가 꽤 되는 좁은 길을 따라 나무 계단을 설치해 놓아 산보까지 할 수 있게 해 놓다니!!!
뜻하지 않은 보물을 발견이라도 한 듯 기뻐서 조카와 바로 산보길에 올랐다.
짧은 코스이긴 했지만 꼭대기에 오르니 사방으로 펼쳐진 배나무밭이 한눈에 들어왔다.
봄이면 하야디 하얀 배꽃이 장관을 이룰 것 같아 맘이 벌써 설렜다.
내게 기쁨을 주는 나만의 장소가 또 하나 추가되어 마음 뿌듯했다.

영어학원에 가야 하는 조카를 버스에 태워 보내고 다시 2층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 사이 전산실에 사람이 꽉 차서 노트북 사용할 자리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책을 읽기로 했다. 무슨 책을 읽을까?
갑자기 세익스피어 작품에 구미가 당겼다. 평소에는 손이 잘 가지 않은 작품이었는데...
인간의 사랑과 욕망, 시기와 질투 등의 근원적인 감정을 잘 표현한 작품으로,
특히 작품 속 캐릭터들이 입체적으로 와닿아 누구나 공감한다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은 터라
한번 세익스피어가 창조해낸 캐릭터들과 직접 만나리라 결심했다.
단, 희곡이난 비극의 원문이 아닌 <세익스피어 이야기>라는 원문을 이야기체로 쉽게 각색한 책을 골랐다.
우선 쉬운 책을 본 후에 원문에 도전해 보리라.
그런데 늦은 점심이라 과식을 했는지 눈이 자꾸 감겨 
책장이 넘어가지 않고 같은 곳을 보고 또 보는 악순환이 계속 되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막 세익스피어 작품에 몰입하려는 찰나,
이럴수가, 월요일에는 종합정보실 문을 6시에 마감하니 자리 정리를 하라는 안내 멘트가 나왔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3층 열람실로 자리를 옮겼다.
칸막이가 있는 열람실 안은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의 열기로 후끈후끈했다.
폐쇄된 공간에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탓인지 공기가 답답하기만 했다.
다행히 내 자리가 창가 맨끝이라 숨통이 조금은 뚫렸다고나 할까?ㅋㅋ
노트북을 켠 후 한참 전에 작성하던 한글 문서를 불러내어 이어서 문장 만들기를 했다.
해가 진 저녁이고 칸막이가 있는 밀폐된 곳이어서 그런지... 
쓰려고 하는 문장이 막 떠오르는 바람에 자판을 정신없이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힘을 과하게 낸 채로...
한참을 치고 있는데, 둥그런 얼굴에 앳돼 보이는 남자가 앞 자리에서 머리를 내밀고는
"좀 조용히 해 주세요! 노트북 자판 소리가 너무 커서 집중이 안 돼서 그래요!"
순간, 얼굴 들기가 민망할 정도로 창피해서 난감하기만 했다.
"어! 소리가 컸나요?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만 연발할 뿐ㅠㅠ
날 얼마나 미친 사람이라고 욕했을까? 에구에구...
바로 일어나 나가려 했지만, 웃기게도 엉덩이가 의자에서 떨어지지가 않았다.
할 수 없이 최소한의 힘으로 조심스럽게 자판을 두드리며 문서 작성을 마무리했다ㅋㅋ

우여곡절 끝에 열람실을 나오니 바깥 공기의 시원함에 기분이 상쾌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 왜 그리 외로운지ㅠㅠ
외로움을 좀처럼 타지 않은 나였기에 그 외로움은 더 크게 다가왔다!!!
집 근처 편의점에 들러 산 과자 봉지가 그나마 외로움을 달래주었다고나 할까ㅋㅋ     
분류없음 | Posted by 고추장찍은멸치 2011.02.18 02:43

북에디터에 대한 나의 단상

출판사에 몸 담다가 외도한 지 몇 년의 세월이 흘러간 걸까?
다시는 출판사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투덜댄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듯하다.

근데 웃긴 건 편집자 시절이 아닌 순전히 독자인 요즘에
책을 더 많이 읽고, 책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편집자로 일했다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아는 게 없었다는 후회가 든다.
독자의 입장에서 책의 가치에 대해 좀더 고민하지 않았기에 말이다.
숲속에 있으면 나무만 보일 뿐 숲을 볼 수 없다는 말이 새삼스레 와닿는다.

지인의 소개로 출판 현업에 다시 뛰어들 준비를 하던 중에
인터넷으로 지금까지 내가 만든 책을 검색해보았다.
기억이 새록새록;;
내가 손댄 책이 꽤 되는구나 싶어 한편으로는 뿌듯했지만
어찌 저리 허접하게 만들었나 하는 아쉬움과 창피함도 들었다.

사실 말이지만 원고를 받으면 기간 내에 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편집 일 자체를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대표적인 예로, 원고를 쓴 작가에 대한 호기심도
원고 내용에 대한 심도있는 검토도 없이 겉 포장에만 치중했던 것 같다.
전에 건강 관련 원고를 받고 내용이 부실해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이 겉 포장만 요란스레 해서 출간했던 책이 있다.
웬걸? 오늘 그 책에 대한 독자 댓글을 보고 얼굴이 빨개졌다.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책을 구입했는데 내용이 없어 실망했다는 불만스런 글이었기 때문이다.
편집자 또한 독자인데 독자의 입장을 망각해 버리기 일쑤였던 게 사실이다.

책의 가치를 높여주는 건 표지 카피나 보도자료가 아닌
독자에게 만족스러움을 줄 수 있는 내용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내용의 질이 조금이나마 좋아질 수 있도록 이끌어 내는 게 바로 편집자의 몫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독서와 공부가 필요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도서관에 앉아 생각해본 나의 단상 끝^^
    

   
분류없음 | Posted by 고추장찍은멸치 2011.02.17 00:54

국화차 한 잔의 여유

일회용 커피는 텁텁한 맛에 너무 자주 마셔서 질리고,
감기로 고생할 때 톡톡히 덕을 본 유자차는 더 이상 손이 안 가고,
호박차는 웬지 걸죽한 죽을 먹는 느낌이라 싫고...

뭔가 깔끔하면서도 분위기를 낼 만한 차가 생각나는 하루였다.
홍차 매니아인 한 선배가 오래 전에 한 웅쿰 건내주었던 홍차는 바닥난 지 오래고ㅠㅠ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대체할 만한 차를 찾아 삼만리...
찬장을 이리 뒤지고 저리 뒤지고 하다가 락엔락에 꽉 들어찬 국화꽃 발견!

몇 년 전에 중국을 다녀오신 엄마가 국화차 끓여 먹으라고 사가지고 온 게 아직 있었다. 
처음엔 짙은 노란색 국화꽃이었는데, 지금은 색이 바래 허여멀건했다.
이리 색깔이 바랬는데 찻물이 우러나올까?
반신반의 한 상태에서 우선 국화꽃을 찬물에 한번 행구고(혹시 남아 있을지도 모를 농약 성분을 고려하여...)
거름망에 넣은 다음, 뜨거운 물을 넣은 티포트에 담궈 놓았다.

2분 정도 물 색깔의 변화를 지켜보다가 다도용 작은 컵에 조심스레 따라보았다.
아니, 이럴 수가!
그 허여멀건한 꽃잎에서 노란빛이 도는 찻물이 나올 줄이야.
맑고 청아한 빛깔이 내 마음까지 정화시켜주는 느낌이었다.

은은한 향이 나는 국화차를 조심스레 입에 대보았다.
특별한 맛은 없지만 부드럽게 넘어가는 그 맛 자체에 매료되었다.
전통차 마시기 붐이 일었던 20대 때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감잎차, 장미차, 허브차 등 두루 마셔보던 중 우연히 국화차를 만나게 된 적이 있다.
호기심에 마셔본 국화차는 아무 맛이 없는 맹탕일 뿐이었다.
단지 이제 갓 따온 듯 싱싱해 보이는 국화꽃을 감상하는 데 위안을 삼아야 했다.

이젠 나이가 들어서인가?
20대 때 느끼지 못한 국화차의 깊은 맛을 음미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한 모금 한 모금 들이키니 들에 핀 국화꽃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야생화인 국화 한 그루가 끈질기제 살아남아 꽃을 피우기까지,
그 원시적 생명력을 한껏 들이마시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머리에서 발끝까지 깨끗한 물로 샤워한 듯 개운함마저 들었다.

선배가 준다고 한 홍차가 올 때까지 국화차에 맘껏 취해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