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없음 | Posted by 고추장찍은멸치 2011.02.24 01:58

'강촌' 하면 떠오르는 건?

대학 시절 OT 나 MT ? 아님,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무궁화호? 아님, 자전거길?
20대 때, 기나긴 겨울이 끝나갈 쯤 봄의 기운에 이끌려 젊은이들이 찾는 야유회 필수코스였던 곳!
나이가 들면서 차츰 잊혀져갔던 그 강촌을 오늘 나들이 행선지로 정했다.

20대 때의 추억보다는 유난히도 추웠던 이번 겨울의 기세가 꺾이고
봄 기운이 완연한 오늘 하루를 도시가 아닌 야외에서 보내고픈 마음과
마침 봄방학을 맞이한 조카 두 놈에게 바깥바람을 쐬어주고 싶다는 기대심리가 맞아떨어졌다고나 할까?
게다가 집 근처에 있는 상봉역에서 춘천까지 가는 전철이 생겼다고 내내 들은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청량리역 만남의 광장에서 만나 기차를 타고 갔던 낭만이 사라져 아쉽긴 했지만,
기차표를 끊고 기차시간에 맞춰 가야 하는 번거로움 없이 아무때나 가도 되는 편리성은 마음에 들었다.
전철역 풍경은 어떨까? 평일이니 역내는 한가롭겠지? 하는 기대를 하며 집을 나섰다.
하지만 전철역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그 기대는 단번에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전철역 풍경은 일반 중앙선 역들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구조였고
평일이라고 하기 무색할 정도로 전철역은 사람들로 꽉 차서 플렛폼까지 인파에 이끌려 겨우 들어설 수 있었다.

다행인 건 대기중이던 춘천행 전철이 있었다는 것!
아뿔사, 근데 이게 뭐람?
들어선 전철 안은 이미 자리가 없어서 서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조카놈들을 데리고 한 시간도 넘게 걸릴지도 모를 강촌까지 어떻게 서서 가지?
하는 걱정을 하며 전진 또 전진을 했다.
노력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한참을 전진하니 빈 자리가 있어서 우리 셋은 소중한 보금자리에 안착할 수 있었다.

워낙 긴 노선이다 보니 출발 시간이 정해져 있어, 30분 가까이 기다린 후에야 출발했다.
그 사이 전철 안은 서서 가는 사람들이 빽빽히 들어찰 만큼 꽉 차 있었다.
등산이나 나들이를 가는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고, 방학 중인 학생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전날밤에 잠을 잘 못 잔 탓에 곤한 잠에 빠진 터라 창밖 풍경은 거의 보지 못했다.
하긴 서 있는 사람들이 시야를 가려 눈을 뜨고 있었서도 보진 못했겠지만ㅠㅠ
그냥 어두운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이모, 얼마나 더 가야 돼?"
6살짜리 조카놈이 서울에서 출발하자마자 연발해대던 질문이다.
이 지루한 질문은 한 시간쯤 지난 후 강촌역에 도착하고서야 끝이 났다.
엄밀히 말하면 강촌역까지 4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춘천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린다.

강촌역을 빠져나오자 맑고 상쾌한 공기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여전히 강촌역은 젊은이들의 장소인 듯, 
중고생이나 대학생들로 보이는 남녀 청춘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런데 너무 낯선 느낌?
이전에는 기차역에서 내리면 바로 자전거길이 있는 멋진 풍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곳은 휑해 보이는 도로와 관광안내소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다.
우선 안내소에 가서 자전거 대여소가 어딘지 물어보았다.
다행히 도로를 따라 10분 정도 내려가면 자전거 대여소가 즐비해 있다고 했다.

도로를 따라 걷긴 했지만 멀리 내다보이는 기암절벽이 자태를 뽐내는 산들이 있어 기분은 좋았다.
강촌 초입에 들어서니 안내소 직원 말처럼 자전거 대여소는 많이 있었다.
그런데 자전거길은 2차선 도로 옆 좁은 보도를 한참이나 걸어가고서야 발견할 수 있었다.
자전거로 도로 위를 달리는 건 위험할 것 같아 자전거길에서 가장 가까운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렸다.
자전거 한 대당 3천원이고, 시간은 2시간 정도인데 그냥 실컷 타고 오라는 넉넉한 인심을 보여주었다.

자전거길은 여러 곳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어린 조카 땜에 평탄한 길인 강변을 따라 페달을 밟았다.
아직 겨울이라 그런가? 강변길 주변이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휑하고 코스도 짧아서 행선지를 바꾸기로 했다.
대여소 아저씨가 험한 길이라 권하고 싶지 않다고 한 구곡폭포행 코스에 도전해 보기로 한 것이다.

구고폭포 코스 초입은 차도 다니고 공사 중인 구간이 있어 번잡스러웠지만, 
점점 더 들어가자 깊은 산 속에 들어온 듯 고즈넉한 분위기에 계곡물 또한 맑고 투명했다.
따뜻한 날씨인데도 곳곳에 눈이 쌓여 있고, 빙판길 또한 많이 있어 조심해야 했다.
무엇보다 오르막길 연속이라 어린 조카놈의 연거푸 쏟아내는 울부짖음에 멈추는 시간이 더 많았다.
인적이 드문 산길이라 가게도 거의 없었다. 간혹 있는 포장마차형 가게도 문이 닫혀 있었다.
조카를 달래가며 한 시간 넘게 오르고 오르기를 한참 한 후에야 산길에서 벗어나 도로 옆 보도로 나올 수 있었다.
구곡폭포에 거의 다 온 걸까? 그런데 웬걸? 구곡폭포까지 2킬로미터를 더 가야 한다는 이정표 발견ㅠㅠ

조카는 물론 나 또한 한순간에 다리가 풀려버렸다.
알고 보니 강촌역에서 내린 등산객들이 도로를 따라 20분 정도 걸으면 우리가 도착한 이곳에 닿고,
조금만 가면 본격적인 등산길이 나오며, 거기서 한참을 가야지 구곡폭포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부터는 자전거를 탈 수 없으니 자전거 보관대에 묶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20분 정도면 걸어올 길을 비탈진 산길을 돌고돌아 한 시간 넘게 걸려 올다니...망연자실!

힘이 빠진 우린 결국 구곡폭포는 다음을 기약하며 우선 허기를 채우기로 했다.
마침 닭갈비집이 있어 닭갈비를 먹으며 기분도 달래고 기력도 재충전했다.
맛도 맛이지만 서비스하시는 할머니의 정겨운 말투와 
세심하게 챙겨주시는 마음씀씀이에 가슴까지 푸근해졌다ㅋㅋ
이름은 까먹었지만 등산로 초입 한적한 곳에 규모가 꽤 큰 식당이다.

돌아가는 길은 원기회복도 하고 내리막길이라 신나게 쌩쌩 달릴 수 있었다.
단순한 조카놈은 자기 자전거가 무지 빨라졌다며 내내 싱글벙글이었다.
대여 시간을 2시간 넘게 초과한 탓에 걱정을 했는데,
대여소 아저씨는 끝까지 넉넉한 인심을 보여주셨다.^^

강촌역에서 10분 정도 기다려 상봉행 전철을 탔는데, 춘천에서 탄 사람들로 자리는 이미 꽉 찬 상태였다.
궁여지책으로 전철 맨 앞칸 자전거 고정대에 몸을 의지한 채 출발할 수 있었다.
그런 여건도 잡지 못한 나이 지긋한 동호회 등산객들은 한무더기로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여담을 나누었다.
도심 전철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기에 쿡쿡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전철에 타고 있던 젊은 엄마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경춘선은 항상 노인분들이 장악하고 있다고 한다.
차표도 공짜인데다 일이 없는 노인분들이 아침부터 삼삼오호 모여 나들이를 하시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평일이라고 여유부릴 생각은 하지 말라는 당부까지 했다ㅋㅋ
 
                  
 

 

분류없음 | Posted by 고추장찍은멸치 2011.02.22 01:44

노트북 자판 열라 치다 구사리 맞다ㅠㅠ

평소 내가 애용하는 중랑구립도서관.
집에서 자전거로 달리면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로,
봉화산 끝자락이 포근히 감싸고 배밭이 멋진 배경을 이루고 있는
신내동 끄트머리에 자리잡고 있는 꽤 규모가 큰 도서관이다.

햇살이 따뜻이 비추는 날에는 봉화산을 따라 나 있는 샛길로 들어서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시골길의 맑은 공기와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걸
하나의 낙으로 삼은 지 오래다.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인적이 드물만큼
조금은 외진 곳이라 내가 발견한 나만의 공간 같아 기쁨은 더욱 크다.

오늘은 봄방학을 맞은 조카와 동행한지라 자전거 대신 버스를 타서 조금은 아쉬움이 있다.
조카는 1층 어린이도서관으로, 나는 2층 종합정보실 전산실의 한켠에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켰다.
빠른 시일 내에 작성해야 할 숙제(?)가 있었기에 한글 문서 화면을 띄워놓고 열심히 작업을 했다.
원하는 문장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의 답답함이란ㅠㅠ
2시간을 넘게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열심히 문서 작성을 하다가
배고프다는 조카의 성화에 늦은 점심을 먹고 티타임을 갖기로 했다.

3층 옥상에서만 커피를 마셨는데, 오늘은 1층 바깥 휴게실을 이용하기로 했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뺀 후 햇볕이 잘 드는 곳이 어딜까 한참을 둘러보다가 멋진 곳 발견!
아니 이럴수가! 휴게실 한켠으로 공원처럼 뻥뚫린 공간과 함께
야산이긴 하지만 경사가 꽤 되는 좁은 길을 따라 나무 계단을 설치해 놓아 산보까지 할 수 있게 해 놓다니!!!
뜻하지 않은 보물을 발견이라도 한 듯 기뻐서 조카와 바로 산보길에 올랐다.
짧은 코스이긴 했지만 꼭대기에 오르니 사방으로 펼쳐진 배나무밭이 한눈에 들어왔다.
봄이면 하야디 하얀 배꽃이 장관을 이룰 것 같아 맘이 벌써 설렜다.
내게 기쁨을 주는 나만의 장소가 또 하나 추가되어 마음 뿌듯했다.

영어학원에 가야 하는 조카를 버스에 태워 보내고 다시 2층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 사이 전산실에 사람이 꽉 차서 노트북 사용할 자리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책을 읽기로 했다. 무슨 책을 읽을까?
갑자기 세익스피어 작품에 구미가 당겼다. 평소에는 손이 잘 가지 않은 작품이었는데...
인간의 사랑과 욕망, 시기와 질투 등의 근원적인 감정을 잘 표현한 작품으로,
특히 작품 속 캐릭터들이 입체적으로 와닿아 누구나 공감한다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은 터라
한번 세익스피어가 창조해낸 캐릭터들과 직접 만나리라 결심했다.
단, 희곡이난 비극의 원문이 아닌 <세익스피어 이야기>라는 원문을 이야기체로 쉽게 각색한 책을 골랐다.
우선 쉬운 책을 본 후에 원문에 도전해 보리라.
그런데 늦은 점심이라 과식을 했는지 눈이 자꾸 감겨 
책장이 넘어가지 않고 같은 곳을 보고 또 보는 악순환이 계속 되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막 세익스피어 작품에 몰입하려는 찰나,
이럴수가, 월요일에는 종합정보실 문을 6시에 마감하니 자리 정리를 하라는 안내 멘트가 나왔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3층 열람실로 자리를 옮겼다.
칸막이가 있는 열람실 안은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의 열기로 후끈후끈했다.
폐쇄된 공간에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탓인지 공기가 답답하기만 했다.
다행히 내 자리가 창가 맨끝이라 숨통이 조금은 뚫렸다고나 할까?ㅋㅋ
노트북을 켠 후 한참 전에 작성하던 한글 문서를 불러내어 이어서 문장 만들기를 했다.
해가 진 저녁이고 칸막이가 있는 밀폐된 곳이어서 그런지... 
쓰려고 하는 문장이 막 떠오르는 바람에 자판을 정신없이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힘을 과하게 낸 채로...
한참을 치고 있는데, 둥그런 얼굴에 앳돼 보이는 남자가 앞 자리에서 머리를 내밀고는
"좀 조용히 해 주세요! 노트북 자판 소리가 너무 커서 집중이 안 돼서 그래요!"
순간, 얼굴 들기가 민망할 정도로 창피해서 난감하기만 했다.
"어! 소리가 컸나요?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만 연발할 뿐ㅠㅠ
날 얼마나 미친 사람이라고 욕했을까? 에구에구...
바로 일어나 나가려 했지만, 웃기게도 엉덩이가 의자에서 떨어지지가 않았다.
할 수 없이 최소한의 힘으로 조심스럽게 자판을 두드리며 문서 작성을 마무리했다ㅋㅋ

우여곡절 끝에 열람실을 나오니 바깥 공기의 시원함에 기분이 상쾌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 왜 그리 외로운지ㅠㅠ
외로움을 좀처럼 타지 않은 나였기에 그 외로움은 더 크게 다가왔다!!!
집 근처 편의점에 들러 산 과자 봉지가 그나마 외로움을 달래주었다고나 할까ㅋㅋ     
분류없음 | Posted by 고추장찍은멸치 2011.02.18 02:43

북에디터에 대한 나의 단상

출판사에 몸 담다가 외도한 지 몇 년의 세월이 흘러간 걸까?
다시는 출판사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투덜댄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듯하다.

근데 웃긴 건 편집자 시절이 아닌 순전히 독자인 요즘에
책을 더 많이 읽고, 책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편집자로 일했다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아는 게 없었다는 후회가 든다.
독자의 입장에서 책의 가치에 대해 좀더 고민하지 않았기에 말이다.
숲속에 있으면 나무만 보일 뿐 숲을 볼 수 없다는 말이 새삼스레 와닿는다.

지인의 소개로 출판 현업에 다시 뛰어들 준비를 하던 중에
인터넷으로 지금까지 내가 만든 책을 검색해보았다.
기억이 새록새록;;
내가 손댄 책이 꽤 되는구나 싶어 한편으로는 뿌듯했지만
어찌 저리 허접하게 만들었나 하는 아쉬움과 창피함도 들었다.

사실 말이지만 원고를 받으면 기간 내에 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편집 일 자체를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대표적인 예로, 원고를 쓴 작가에 대한 호기심도
원고 내용에 대한 심도있는 검토도 없이 겉 포장에만 치중했던 것 같다.
전에 건강 관련 원고를 받고 내용이 부실해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이 겉 포장만 요란스레 해서 출간했던 책이 있다.
웬걸? 오늘 그 책에 대한 독자 댓글을 보고 얼굴이 빨개졌다.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책을 구입했는데 내용이 없어 실망했다는 불만스런 글이었기 때문이다.
편집자 또한 독자인데 독자의 입장을 망각해 버리기 일쑤였던 게 사실이다.

책의 가치를 높여주는 건 표지 카피나 보도자료가 아닌
독자에게 만족스러움을 줄 수 있는 내용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내용의 질이 조금이나마 좋아질 수 있도록 이끌어 내는 게 바로 편집자의 몫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독서와 공부가 필요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도서관에 앉아 생각해본 나의 단상 끝^^
    

   
분류없음 | Posted by 고추장찍은멸치 2011.02.17 00:54

국화차 한 잔의 여유

일회용 커피는 텁텁한 맛에 너무 자주 마셔서 질리고,
감기로 고생할 때 톡톡히 덕을 본 유자차는 더 이상 손이 안 가고,
호박차는 웬지 걸죽한 죽을 먹는 느낌이라 싫고...

뭔가 깔끔하면서도 분위기를 낼 만한 차가 생각나는 하루였다.
홍차 매니아인 한 선배가 오래 전에 한 웅쿰 건내주었던 홍차는 바닥난 지 오래고ㅠㅠ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대체할 만한 차를 찾아 삼만리...
찬장을 이리 뒤지고 저리 뒤지고 하다가 락엔락에 꽉 들어찬 국화꽃 발견!

몇 년 전에 중국을 다녀오신 엄마가 국화차 끓여 먹으라고 사가지고 온 게 아직 있었다. 
처음엔 짙은 노란색 국화꽃이었는데, 지금은 색이 바래 허여멀건했다.
이리 색깔이 바랬는데 찻물이 우러나올까?
반신반의 한 상태에서 우선 국화꽃을 찬물에 한번 행구고(혹시 남아 있을지도 모를 농약 성분을 고려하여...)
거름망에 넣은 다음, 뜨거운 물을 넣은 티포트에 담궈 놓았다.

2분 정도 물 색깔의 변화를 지켜보다가 다도용 작은 컵에 조심스레 따라보았다.
아니, 이럴 수가!
그 허여멀건한 꽃잎에서 노란빛이 도는 찻물이 나올 줄이야.
맑고 청아한 빛깔이 내 마음까지 정화시켜주는 느낌이었다.

은은한 향이 나는 국화차를 조심스레 입에 대보았다.
특별한 맛은 없지만 부드럽게 넘어가는 그 맛 자체에 매료되었다.
전통차 마시기 붐이 일었던 20대 때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감잎차, 장미차, 허브차 등 두루 마셔보던 중 우연히 국화차를 만나게 된 적이 있다.
호기심에 마셔본 국화차는 아무 맛이 없는 맹탕일 뿐이었다.
단지 이제 갓 따온 듯 싱싱해 보이는 국화꽃을 감상하는 데 위안을 삼아야 했다.

이젠 나이가 들어서인가?
20대 때 느끼지 못한 국화차의 깊은 맛을 음미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한 모금 한 모금 들이키니 들에 핀 국화꽃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야생화인 국화 한 그루가 끈질기제 살아남아 꽃을 피우기까지,
그 원시적 생명력을 한껏 들이마시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머리에서 발끝까지 깨끗한 물로 샤워한 듯 개운함마저 들었다.

선배가 준다고 한 홍차가 올 때까지 국화차에 맘껏 취해보리라^^   
분류없음 | Posted by 고추장찍은멸치 2011.02.16 02:32

소담스럽고 어여쁜 비구니절을 찾아가다

독실한 불교 신자인 이모의 취미는 전국곳곳에 산재해 있는 사찰 나들이다.
규모가 큰 사찰에서부터 인적이 잘 닿지 않는 오지의 사찰까지 두루 돌아다닌다.
그중에서도 미황사나 부석사, 내소사처럼 
작지만 깊은 산속에 자리잡아 심적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절을 좋아한다.

나 또한 그런 이모가 좋다.
나와 띠동갑이라 친구처럼 얘기도 잘 통하는 이모가 내게 절 나들이를 제안했다.
요즘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보고 내내 안쓰러워하던 차에 시간을 낸 것이다.

화정역에서 이모를 만나 양주 방면으로 한참을 가다보니 
장흥 끝자락쯤에 '대승사'라는 팻말이 나왔다.
먹고 유흥을 즐기는 곳으로 유명한 장흥 길목을 지나고 지난 끄트머리에 절이 있다니...
기분이 묘했다. 속세를 벗어난 지점에서 만난 무릉도원이라고나 할까?

차 한 두 대 정도만 있을 정도로 한산한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 절이 하늘에 떠 있는 양 대웅전 처마만이 빼꼼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절 들머리에 고개를 뒤로 젖힐 정도로 경사진 돌계단이 길게 늘어서 있고
그 한참 위에 절이 들어서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으리라.

이곳 비구니 스님이 절 가꾸는 데 바지런하기로 소문이 났다고 하더니
돌계단 하나하나마저 정갈해 보였다.
돌계단 옆 비스듬이 펼쳐진 정원이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어 운치를 더했다.

돌계단을 한참 올라오니 S자형 모양의 기다란 길이 사찰 경내까지 이어져 있었다.
길을 따라 돌담이 쭉 쌓여 있었는데, 봄이 되면 담쟁이들로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겨울이라 갈색으로 퇴색한 담쟁이의 가느다란 줄기만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사찰 경내로 들어선 순간 주변 경관에 입이 벌어졌다.
고지대인 탓인지 사찰 앞으로 위용있게 펼쳐진 산이 이 절의 정원인양 손에 닿을 듯했다.
시야가 확 트이고 공기 또한 투명하여 이곳에 있는 자체만으로도 호연지기를 느꼈다고나 할까?
하지만 세 분 정도의 비구니 스님이 거쳐하는 곳이라
사찰 경내는 자그마한 두 채의 전각만이 나즈막이 들어서 있었다.
      
평소 같으면 절 구경만 하는데, 불교 신자인 이모 덕분에 대웅전 안으로 들어가 삼배를 올려야 했다.
생전 처음해 보는 삼배라 불심은 고사하고 영 어색해서 흉내내기에 바빴다고나 할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평일이고 외진 절이라 이모랑 나 단 둘뿐이어서 내 행태를 숨길 수 있었다.
삼배하는 법을 좀더 연습해서 다음엔 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맞으리라 내심 다짐했다.

옆 전각은 최근에 지어진 건물이라 그런지 세월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웅전은 처마나 기둥 곳곳에 색이 바래 있고, 오세암을 떠오르게 하는 벽화가 사방으로 그려져 있어서
세월의 흔적을 더듬어볼 수 있었는데 말이다.      
옆 전각 안으로 들어가니 이 절 주지스님과 보살들이 대청소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이 건물은 신성함보다는 생활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우리네 거실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모 말로는 이곳에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모셔놓았다고 했다.
현세에서는 힘든 삶을 사신 두 분이 내세에서는 행복하실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대웅전 툇마루에 앉아 풍경소리에 귀기울이며 발 아래로 펼쳐진 산을 내내 내다보고 싶었건만
이모가 공양하러 가자며 서두르는 바람에 그런 여유는 부리지 못하고 공양전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공양전은 소위 밥 먹는 곳으로 식당쯤으로 생각했는데, 이곳 공양전은 들어서는 순간부터 숙연한 마음이 들게 했다.
밥 먹는 것도 하나의 수행으로, 밥톨 하나 반찬 하나 먹는 것에도 조심스러웠다고나 할까?
그래도 여자 둘이 만났으니 수다가 빠질 수 있나?ㅋㅋ
평일이라 적막하기까지 한 공양전에서,
이모와 난 속세에서 허우적대는 속인임을 망각하지 않고 수다삼매경에 한참이나 빠져들었다.
여자의 수다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굳건히 이루어지는 강한 힘이 있음을 세삼 깨달았다.ㅋㅋ

다음에 시간적 여유를 갖고 다시 한번 들러보리라...     
분류없음 | Posted by 고추장찍은멸치 2011.02.14 03:09

작은 깨달음

유난히 바쁜 주말을 보냈다.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한 달에 한 번씩 신촌 토즈에서 만나 모임을 가지는데
이번 토요일 오후가 그날이었다.
토론할 책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였다.

한 소년의 눈에 비친 좀머 씨라는 기이한 행동을 일삼는 아저씨 이야기이다.
제목이 '좀머 씨 이야기'라서 좀머 씨 중심의 이야기일 것 같은데
화자와 사건의 주요 흐름은 7살 소년이 중심이 되는 동화 같은 이야기로, 
좀머 씨는 빈 베낭과 지팡이 하나만을 가지고 계속 하염없이 바삐 걸어다니며 작품의 배경인양  등장한다.
물론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 소년의 행동이나 심리에 영향을 끼치긴 하지만...

작고 얇고 귀여운 판형의 양장본으로, 밝고 서정적인 수채화가 소년의 이야기와 잘 조화되어
겉으로만 보면 한 폭의 시를 읽는 듯한 여유를 선사하는 책이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살기 위해 죽음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위해 끝없이 걸어다녀야 하는
좀머 씨의 아픈 사연이 담긴 묵직한 작품이기도 하다.

토론의 흐름은 주로 좀머 씨는 무엇으로부터 도망쳐야 했고, 결국은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가?
그리고 소년은 왜 좀머 씨의 죽음을 방조하고 끝까지 침묵했는가?
하는 조금은 무거운 주제로 진행되었고 다양한 의견들이 그 흐름을 이어갔다.

이 책에서 이야기할 꺼리는 많이 나왔지만, 
단점은 이 작품이 찬반 양론으로 나뉘어 대치할 만한 토론 주제를 끓어내기에는
다소 미흡한 작품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한 글씨기 강좌에서 만나 우연히 만들게 된 독서토론 모임이고,
다들 토론 환경이 낯선 아마추어로 좌충우돌하면서 세 번째 모임까지 오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토론하면서 토론의 방향이나 토론의 접근 방식에 고민하는 성숙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인원은 많지 않지만 책이라는 공통분모로 고민하는 모습이 참 사랑스럽다^^
좀더 활기차고 내실이 깃들 3월 다음 토론 모임을 기대해본다.

저녁에는 수원으로 가서 조카 돌잔치에 참가했다.
둘째 조카라 조촐하게 치러질 예정이었는데,
친가 쪽과 외가 쪽 친척들이 총출동하는 바람에 판이 꽤 커다란 잔치마당이 돼버렸다.
그덕에 난 어르신들께 줄창 인사해야 하는 곤욕스럼을 당해야 했다ㅠㅠ
태어난 지 1년밖에 안 된 그 조그만한 아이가 각지에 있는 수십 명의 사람들을 모이게 하다니...
한 번 태어나면 자신도 모르게 거미줄 같은 인간관계가 형성됨을 여실히 깨달았다.

일요일은 한가로웠지만 괜시리 마음이 잡히지 않은 날이었다.
새롭게 일을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왔고,
앞으로 닥쳐올 변화에 어찌 대처해야 할지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리라.
덤으로 남친과의 상흔들까지...

혼자서 생각할 시간을 피하고 싶었다고나 할까?
핸드폰 컬러링 바꾸고(SG원너비의 '첫눈'에서 박효신의 '눈의 꽃'으로 바꾸면서
비슷한 분위기의 노래인데 가사는 정 반대임을 발견했다),
TV  보면서 피자 먹고, 조카들 게임 구경하고, 신문 보고, 목욕하고, 
남친(헤어진거나 마찬가지이지만...)에게 걸려온 전화 잠깐 받고...
 
깨달은 것!
'내 자신에게 당당해지자'
남친과 만나면서 힘들었던 이유는 바로 당당하지 못한 내 자신 때문이었다.
치열하게 사는 남친 못지 않게 나 또한 내 일에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해 본다.
한 달 넘는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내 자신이 많이 성장했음을 발견한다.
철도 좀 들고 강해졌다고나 할까?(넘 자화자찬인가ㅋㅋ)
미래는 내가 하기 나름임을 가슴에 새겨본다.
 
분류없음 | Posted by 고추장찍은멸치 2011.02.09 02:07

바다가 보고파 바다에 가다

가슴 속 멍울이 숨을 조여오는 듯했다.
벗어나야 한다.
뻥 뚫린 바다를 보면 나아지려나?
경포대 앞바다, 거세게 몰아치던 겨울 파도가 갑작스레 떠올랐다.
무작정 강릉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2010년 마지막날 해돋이를 보기 위해 남친과 함께 나섰던 그곳에 지금은 혼자이다.
그때는 세찬 바람도, 푹푹 빠지는 모래사장도, 흰 포말을 일으키며 달려드는 파도도,
포근하고 예뻐 보였는데...칼바람이 부는 추운 날이었는데도 함께여서 따뜻했었다.

혼자 나선 경포대 앞바다. 바다는 그대로인데 그때와는 달라 보였다. 한없이 커 보인다고나 할까?
수평선이 보일 듯 탁 트인 겨울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한없이 몰아치는 저 파도에 무엇을 띄워 보낼까?
사랑이라 믿고 허우적댔던 내 허상?

혼자 해변에 우두커니 서 있자니 갈매기 몇 마리가 내 머리를 상회하며 지나갔다.
하야디 하얀 갈매기의 활공하는 모습이 멋스러워 보이면서도, 친구인양 반가웠다.

해변으로 쓸려왔다, 다시 쓸려나가고, 쓸려왔다, 다시 쓸려나가길 끝없이 반복하는 바다 물결이
우리네 인생살이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고, 이별 후에 또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질 테니 말이다. 
 
 저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에 내 가슴 한켠에 쌓인 먼지 훨훨 털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뭔 미련이 남았는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고 자꾸 바다로 눈길이 갔다.
그 눈길 다시 바로잡고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분류없음 | Posted by 고추장찍은멸치 2011.02.02 01:20

사진이 하나도 없네ㅠㅠ

2주 넘게 감기에 시달리고 있다. 심하지 않으면 유자차를 마시며 이겨내는데, 귀에 이상 증세를 보이면 어김없이 이비인후과를 찾는다. 감기가 심해지면 중이염으로 이어져 고생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감이 좋지 않더니 역시나 중이염 증세를 보여 중이에 생긴 염증 치료(엄청난 고통이 따른다ㅠㅠ)를 하고 엉덩이 주사까지 맞아야 했다. 독하기로 소문난 약까지 처방받아 먹어야 했다. 이와 같은 과정을 오늘까지 두 번 더 반복해야 했고 내 앞에 5일치 약봉지가 수북히 쌓여 있다.

몸이 아프면 만사가 귀찮은 법. 남친 때문에 머리도 아프고...멍하니 앉아 있자니 청승맞은 것 같고 해서 노트북을 무작정 켰다. 유키 구라모토의 피아노 곡을 반복 재생해 놓고 블로그에 들어와 보니 뭔가 휑한 느낌이다. 내가 풀어놓은 넋두리 글만 잔뜩 있고 이미지가 하나도 없다.

난 친절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내 블로그에 일부러든 우연이든 누군가가 들어올 텐데 그 누군가에 대한 배려가 없다. 이미지가 대세인 요즘 사진이나 그림 한 장 올리지 않고 딱딱한 텍스트만으로 채워놓고 있으니 말이다. 다른 블로그에 가면 멋진 사진으로 눈요기를 시켜주는 곳이 있는가 하면, 여러가지 실용적인 정보도 많이들 챙겨주던데... 앞으로 좀더 내실있는 블로그 활동을 하고 싶다. 2011년의 작은 바람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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